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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9-10 22:33
충선왕의 재조명1
 글쓴이 : 이초식
조회 : 3,375  
 

10여 년간 (1307-1320)

세계 역사를 선도한 충선왕을 재조명한다.


     필자는 전문 역사학자도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비전문  향토사학인도 아니다. 호기심에 매료되고 계속되는 의문에 봉착한 철학도의 한 사람으로서 충선왕의 알려지지 않은 측면을 조명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에 이 글을 쓰게 되다. 이글은 관심의 방향을 돌리기 위한 재조명만을 목적으로 하므로 세부적인 원전인용은 앞으로의 일로 남겨두기로 한다.


   필자가 특히 충선왕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21대 조부님(李連松)이 충선왕을 지키기 위해 앙약순절(仰藥殉節)하셨다는 비보를 접한 이 후 부터라고 하겠다. 이 개인적인 관심이 대종회의 일을 맡게 되며 더욱 본격화되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면 그 인간관계는 특별했을 것이다.  군신(君臣)관계에서 의(義)를 으뜸으로 하는 유교철학을 신봉한 유학자 (안향의 문인)였던 조부님이 그 길을 택한 것은 당연하리라는 일반론으로만 만족할 수 없었다. 충선왕의 인간적인 매력이나 철학적 공감대와 같은 어떤 깊은 연관이 조부님이 순절을 결심하도록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충선왕은 우리 역사에서 잠시 5년 간 재위하고

   1) 원나라에 세자시절이나 상왕이 되어서도 인질로 가 있던 사람,

   2) 고려의 자주성은 원종까지고 충렬왕과 충선왕이후, 특히 충선왕은 진심으로 고려를 제국의 일원으로 여기고 국왕을 황제의 신하로 여겨 자주성을 잃게 한 왕,

   3) 재임 기간에도 원에 있기를 즐기고 

   4) 문학과 풍류를 좋아 했던 임금

   5) 정치에는 관심이 없고 여행이나 즐긴 임금


 이 정도로 부정적인 평가나 동정의 대상으로 이해해온 나의 상식을 재음미하고 이런 측면만을 보아와 분들의 관심을 그와 판이한 측면에 돌리기 위한 재조명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첫째 우리 역사에서 다른 왕들이 실질적인 인질생활을 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렇게 이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충선왕의 경우는 세자시절에 외할아버지가 외손자를 인질로 삼았다고 해야 하므로 사리에 어긋난다. 다음 기록은 인질과하는 대화로는 거리가 너무 멀다.


 


  (징기스칸인) 쿠빌라이는 외손자를 자주 궁궐로 불러들였다. 하루는 침전으로 외손자를 불러 물었다.

“요즘은 무슨 글을 읽느냐?”

“통감 (通鑑)을 읽고 있습니다.”

“그래 역대 제왕 중에서 누가 현명하더냐?”

“한 고조와 당 태종입니다.”

“그러면 한 고조와 당태종이 짐과 비교해 어떠하냐?”

“제가 아직 나이가 어려서 잘 모르겠습니다.”

“그럴 것이다. 재상들에게 물어가지고 오라”


둘째, 고려의 자주성은 원종까지고 충렬왕과 충선왕이후, 특히 충선왕은 진심으로 고려를 제국의 일원으로 여기고 국왕을 황제의 신하로 여겨 자주성을 잃게 한 왕이라는 관점도 가능하며 아마도 그것이 정설일 것 같다. 그러나 국가의 자주성은 말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주성을 유지할 힘이 있을 때만이 가능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1291년 합단(哈丹)의 군사가 고려를 침공해 개경을 함락시키고 원주 충주, 연기 등에서 1년 6개월간 고려군과 전투를 벌이고 충렬왕과 원공주는 강화도에 피신해 전쟁을 관망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고려장군 오인영이 원군을 보내 달라는 요청을 거절하는 쿠빌라이의 다음과 같은 질타는 음미해볼 만하다.


“당 태종이 친히 정벌했어도 이기지 못하였고 우리나라 초기만 해도 복종하지 않아 여러 번 정벌하였어도 쉽사리 이기지 못하였던 너희 나라가 이 좀 도둑에 대해선 어찌 그렇게 두려워하느냐”


   이 쿠빌라이의 말에서도 자주성은 힘에 의해서만 지켜질 수 있음이 분명하다. 고종과 원종시절 고려는 세계를 정복한 징기스칸도 정복 못해 고생했음이  쿠비라이 스스로의 입을 통해  고백한 셈이다. 그러나 상황은 달라졌다. 합단의 침입 시는 자주성을 지킬 힘을 상실했으므로 우리 고려가 스스로 제국의 제후국의 일원이니 제발 도와주십사고 간청했다. 오히려 너희 나라는 자주 국가이니 너희 힘으로 지키라는 질타다. 어찌되는가? 황제는 자주성을 인정하고 고려는 제후국임을 자청하니 말이다.


  이처럼 원군을 거절당했으나 때마침 원나라에 있던 세자 충선왕은 외조부에게 간청하여 고려 원군 1만 명을 얻어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되는 공헌을 한다. 뿐만 아니라 식량원조까지 받아낸다

   

세자는 합단을 토벌한 후 식량원조까지 받기 위해 호소한다.

“근년 이래 백성들이 변경에 주둔하여 군량을 수송하느라 농사를 그르쳐 식량이 부족합니다.” 쿠빌라이는 배 47척에 강남미: (양자강 이남에서 나오는 질 좋은 쌀 ) 10만 석을 실어 고려에 보내다.


 셋째, 재임 기간에도 원에 있기를 즐긴 왕이라면 왕이 될 자격이 없는 왕으로 이해된다. 물론 그렇다. 하지만 왜 원에 있으려고 했는지 그 이유나 동기를 좀 따져 보아야 한다.


   충선왕은 소년시절 외가인 원 황실에서 지낼 때 많은 황족들과 두터운 친분을 맺을 수 있었다. 특히 6세 아래인 무종(武宗)과 10세 아래인 인종(仁宗)은 충선왕과 오랫동안 침식을 같이하며 형님처럼 모시고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성종(成宗)이 죽은 후 무종이 황제를 계승할 때 권력투쟁에서 충선왕이 크게 공헌하여 심양왕으로 봉해지기 까지 하였다.

   

   징기스칸이 세계를 지배하던 당시에 한편으로는 내부적인 갈등을 해소하고 그 많은 이 민족을 통솔하고 통합하여야 정치가 요구되었다. 큰 정치는 무력만으로는 할 수 없고 이 민족들도 공감하고 수긍하며 추종할 수 있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 그 통치철학은 높은 이념과 현실 세계의 정확한 정보를 연결하여 판단하고 결단하는 두뇌가 없이는 실현될 수 없다. 이러한 세계 경영의 최고 두뇌의 자리에 있던 사람이 바로 충선왕일 것 같다. 충선왕을 총평하는 고려사의 글에서도 그 한 측면을 찾아 볼 수 있다.


“ 왕은 어진 이를 좋아하고 악한 자를 미워하였으며 총명하고 기억력이 좋아서 무엇이든지 한번 듣고 본 것은 죽을 때까지 잊어버리지 않았다. 매양 선비들을 모아놓고 옛날 국가들의 흥망에 대해서와 임금과 신하들의 잘하고 잘못한 것을 논평하고 연구하기를 근면하여 조금도 게으르지 않았다.”


   왕은 그의 개인저택에 만권당 (萬卷堂)이라는 세계 규모의 연구소를 만들고 당시 세계 각국에서 일급 학자를 모아 중요한 일들을 열심이 토론하고 정책을 만들어 황제에게 제공하였다. 원나라가 처음으로 실시한 과거제도는 충선왕의 연구소의 소산이다. 무종이 황제가 되면서 충선왕은 오랫동안 품었던 세계경영의 꿈을 펴기 시작했던 때에 부친 충렬왕이 돌아가시어 고려국왕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부왕의 장례를 마치고 왕위를 계승하여 혁신적인 정책을 발표하여 시행토록 한 이후에는 황제의 부름을 받고 원나라에 상주하게 된다. 하지만 국왕이 오래도록 임지를 떠나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던 왕은 일년 후 양위를 결심하게 되나 이를 성취하지 못하고 5년을 왕의 자리에 할 수 없이 있게 된 것으로 필자는 풀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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