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기관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라는 질문으로 설문조사를진행했다. 이에 대해 미국인들의 60%가 ‘아버지’라고 대답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같은 대답을 한 사람은 6%에 불과했다.

나와 내 주변을 봐도 존경받는 아버지는 많지 않은 것 같다. 모든 아버지는 요즘같은 경제 불황에 학벌이 없어서, 인맥이 없어서, 제도권에 속하지 못해서, 운이없어서 고민하고 있다. 여기에다 남편을 능력 위주로 생각하는 아내가 이 시대의

가장을 벼랑으로 몰아가고 있다.

아버지가 하는 일은 으레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할 말이 없다. 설령할 말이 있어도 말하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한쪽에서는 어머니가 위대하다고 힘을

펼치는 반면, 아버지의 모임은 활성화되지 않는다. 예전에는 시집가는 여자에게죽어도 그 집 귀신이 되라고, 죽어도 그 집에서 죽으라고 했다. 지금은 달라졌다.

아버지 A 씨, 회사를 열심히 다녔는데 상사에게 좋지 않은 소리를 들었다. 자기보다 나이 어린 상사에게 욕을 먹고 나니 고통을 이겨내기 힘들다. 소주를 마셔 울분을 세척한다.

그러나 집에 알리기가 쑥스럽다. 아내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물을 마시며 술이 깰 때까지 고민 중이다.

아버지 B 씨, 열심히 살았는데 건강검진 결과 위암 말기였다. 죽을 날이 얼마 남지않았는데 해놓은 것이 별로 없다. 가족에게 고백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다.

아버지 C 씨, 아이를 많이 낳았는데 실제 벌어놓은 것이 얼마 없다. 자기 운명을한탄하는 사이 아내와 아이들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아버지 D 씨, 아내의 돈 1억 원을 주식에 투자했다가 홀라당 까먹었다. 아내에게비밀이다. 아내에게 고백하면 우습게 볼까봐 말도 못하고 고민한다.

아버지 E 씨, 결혼하면 잘살게 해줄 것이라고 아내에게 약속 했었다. 그러나 집크기는 50m(옛 15평)이고 소형차를 굴리고 있다.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아버지 F 씨, 사업이 잘 안 된다. 이 집 저 집 전전하며 술을 마시고 ‘오늘은 돈있는 여자 없나‘ 두리번거린다. 돈을 벌어봤자 거의 술값으로 들어간다.

아버지 G 씨, 한 마디로 죽고 싶은 남자다. 돈이 다 떨어지고 집에 들어가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다. 등산로 입구의 소나무에 목을 맬 끈을 달아 놓은 지 오래됐다고 한다.

물론 모든 아버지가 이들과 같은 처지는 아니다. 하지만 나도 이들 중 하나다.

사는 게 편치 않고 괴롭긴 마찬가지다. 나를 보고 안녕 하시냐, 별 일 없느냐고 물을 때면, 그저 그렇다고 거짓말을 해야 하는 내가 간혹 슬프다.

이따금 가족에게 부아가 나는 게 있다. 아내나 자식이나 너무 사귀기가 힘들다는것이다. 모든 문제를 아버지의 책임으로 돌리는 게 화가 나고,

아내나 아이들이 먼저 나를 사귀려고 노력하면 안 되는지 답답하다. 그러다 문득, 진짜로 나를 사랑해 달라고 말하고 싶다. 어떤 경우에도 아버지가 집안의 최고이며, 인생에서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 격려를 받고 싶다. 절약하고 검소하게 생활하면 되니까

돈을 많이 벌어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줬으면 좋겠다. 감자로 한 끼를 때워도행복하다고 말하는 가족이 그립다.

내 아버지를 떠올릴 때면 한없이 안쓰럽다. 고생만 하다가 저 세상에 가셨으니,그런데 나 역시, 내 아버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돌이켜 보면, 그저 나이만 먹었다.

앞날이 걱정된다. 그러면서도 내가 굉장히 잘난 줄 알고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달라질 수 있을까. 이제부터라도 성숙한 아버지가 이끄는 삶, 그게무엇인지 도전해 보고 싶다. 그리고 이 사회의 아버지가 더 이상 가족의 화풀이대상이 아니었으면 한다.

짐을 얹으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시대 모든아버지는 가족으로부터 위로와 격려를 받고 싶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