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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1-30 18:26
[기고] 혈연관계에의 탐색
 글쓴이 : 이초식
조회 : 2,234  

     
   혈연관계(血緣關係)에의 탐색



오랜만에 아들네를 찾았다.

아들이 유학 왔다 재미 동포와 결혼하여 그곳에 머물기 때문에 자주올 수 없다.

그 동안 가끔 보아온 손자들과는 각별한 관계다.

만나는 순간 그들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미소의 얼굴을 하고 있다.

엄마나 아빠가 해주지 않으나 하고 싶은 것을 우리들이 해 주리라는 기대감 때문일까?

 

우리들이 이들에 대해 갖게 되는 느낌도 유별나다.

아들딸을 기를 때 가졌던 애정과도 다르다.

어느 정도 책임의 틀에서 벗어나 순수한 애정만을 갖게 되기 때문 일가?

하여간 할아버지 할머니와 손자들과의 관계는 묘하고 특별하다. 

도착 첫날 우리부부가 곤히 자고 있는 새벽 3시다.

큰 손자가 들어와 나와 아내사이에 파고든다.

“할머니, 궁둥이를 좀 긁어 주세요.”

“그래 할머니는 등을 긁고 나는 궁둥이를 긁어 주마.”

하며 한참 둘이서 긁어 주니 이리 저리 두 채다 잠든다.

우리도 한 잠을 자고난 때이다.

 


마루에 이상한 소리가 나기에 나가 보았더니

둘째가 이층에서 자다 내려와 마루에서 잔다.

둘째는 좋아하면서도 애정표현에서만은 소극적이다.

그래서 이불을 갖고 나가 덮어주고

나도 그 옆에 누어 자는 모습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하늘이 나에게 주신 귀한 선물임에 틀림없다.

자고 있는 그 얼굴에 여러 번 뽀뽀를 해주지 않을 수 없었다.

혈연관계라는 관계의 성질은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런 느낌을 갖게 되는가?

만약 이 손자와 나, 둘 중 하나가 살려면

다른 하나는 죽어야 하는 어떤 상황에 직면한다면

나는 서슴없이 죽을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어머님과 아버님도 아마 그러했으며

할머님과 할아버님도 그랬을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부모들도 있다. 하지만 어떤 부모가 정상일까?

자녀가 상처입어 아파하는 것을 보면 남이 그런 때와는 다르다.

가슴에 이상한 전율이 온다. 직업 잃은 자녀가 고생하는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쓰라리다.

 자녀를 위해 헌신적인 희생을 각오하는 부모가 정상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부모, 그 부모의 부모,

이렇게 올라가는 우리의 조상님들은

바로 우리 후손들을 위해 희생을 하신 분들,

어떠한 희생도 각오하는 분들이다.

 


사후(死後)의 세계를 알 수 없는 우리들이

살아 있을 때를 근거로 하여 추리를 한다면

 우리 조상들이 어떻게 하리라고 판단하게 될까?

그분들이 생존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를 도우시리라고 추리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에도

조상님들은 우리를 도우시려고 애쓰신다는 생각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우리는 우리에게 고맙게 하여 주신 분들에게

고맙다고 절하며 마음속 깊이 그 고마움을 되새기고

은해를 갚으려고 한다.

우리의 조상님들은 우리에게 특별히 고마운 분들이다.

따라서 조상님들에게 특별히 고마운 뜻을 갖는 마음은

인간의 공통된 현상이다.

다만 그 뜻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다.

 


자기네와 다른 표현방식을 왜 비방해야 하나

서로 다른 문화양식을 가능한 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지.

우리 사회에서도 조상숭배의 양식을 갖고

소모전을 해오며 증오와 반목을 일삼아 온 일이 있다.

이제 다문화사회에 처한 우리는 그런 잔재를 과감히 청산해야 할 것이다.

 


나는 나의 16대 조부 익(益)자 령(齡) 자 어른,

15대 조부 위(葳) 자 어른

그리고 14대 조부 응(膺)자 길(吉) 자 어른의 묘소가 있는

작성산을 찾을 때마다

특별한 관계의 느낌을 갖게 된다.

이분들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나는 있을 수 없다.

이 관계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자연환경이나 사회여건은

인간의 선택에 의해 어느 정도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조상과 후손의 관계는 바꿀 수 없다.

바꿀 수 없이 주어진 공동체이기에

운명애(運命愛)처럼 애착이 간다.

 


어느 날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

나의 15대 조부이시며 수안이씨 배천파(遂安李氏 白川派)의 조상

‘이위 (李葳)’님의 함자를 발견하게 되었다.

1528년 1월 8일의 기록이다.

481년 전에 어전(御前)에서 있었던 일이다.

오늘날 대종회의 50년 전 기록도 확실하지 않는 것이 많은데

놀랍다.

과연 세계 문화유산이 될 만한 기록이다.

 


그런데 그 기록의 내용을 읽는 순간 나는

이 기록을 숨기고 싶은 부끄러움을 갖게 되었다.

이위님을 양지현(陽智縣) 현감에서 파직시키라는 어명이기 때문이다.

자기 조상이 훌륭하기를 바라는 후손들이

공통으로 갖게 되는 느낌일 것 같다.

그 파직의 이유가 부정부패와 같은 것이 아니고

‘자기의 뜻만 따르고 공론을 무시함이 심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파직시켜야 한다고 한 사람은 많은데 유독 이위님의

파직만이 윤허된 것이다.

  

또한 그 사람들을 파직해야 한다고 그 전날 말씀올린 세 사람 중

한 사람이 다름 아닌 이위님의 친 형님 이기(李虁)어른이시다.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 사실을 내 아내와 여동생에게 이야기 했다.

“조상님이 줏대가 세고 강직하셨기 때문이다”고

다 같이 매우 좋게 해석하는 것이다.

나 역시 될 수 있는 대로 좋은 방향으로 풀이하고 싶다.

이것이 후손들의 한결 같은 바람일 것이다.

 


이위님은 47세에 현감에서 파직되었으나

그 후 보다 높은 종이품(從二品)의 벼슬을 하신 것을 보면

후손들의 바람이 빗나간 것은 아닌 듯하다.

많은 사람들의 조상이 될 우리가 후손들의 마음을 배려할 때

나의 처신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동물들도 후손은 각별히 돌본다.

그러나 조상을 돌보는 것은 사람만이라고 한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사람의 특색이다.

조상과 후손의 이 공동체 관계는 인간의 실존적 삶이다.

 이 특별한 관계는 유일무이하다.

나와 내 조상님들과의 혈연관계는 다른 것으로 대신할 수 없다.

 


자기 자식을 돌보지 않고 남의 자식만을 돌본다는 것은 어색하다.

자기 부모를 돌보지 않으며 인류를 사랑한다는 것도 자연스럽지 못하다.

진정으로 자기를 아끼고 자기자녀를 사랑할 줄 알며

자기 조상을 존중할 줄 알아야

그 앎을 토대로 하여

남도 아껴줄 수 있고 남의 자녀도 사랑할 줄 알며

남의 조상도 존중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2009년 1월 30일

 

         이 초식

              수안이씨 대종회 회장

               배천파 34세손

 


이근태 09-06-16 17:01
 121.♡.159.227  
회장님의 위의 논문의 내용이 지금으로부터481년전 서기1528년1월8일에 임금님어전 재상들의 국사회의에서 있엇던 우리선조님들의 공직생활의 공사가분명하게 청렴관리생활을 행한 사실을 "조선왕조실록"에서 찾아 내여서
 우리명문가문의 후손들에게 규감이 될 논문을 감사히 일겄습니다. 참으로 놀랍고 자랑스러운 우리조상님들의 참실한 역사의 한줄기로 현실 사회의 규감이 되기도하옵니다.     
                                  대종회 고문  39세손  소암  근태  올림
이초식 09-06-18 19:47
 61.♡.71.239  
이근태 고문님 ! 
감사합니다.
어려운 투병 중임에도 불구하시고 이와 같이 격려의 말씀을 하여주시는 고문님의 열의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더욱 열씸이 공부하겠습니다. 서학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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